\ 관점을 달리하면 세상이 바뀌는 기적 [미움받을 용기]에서 얻는 지혜
본문 바로가기
  • 몰라도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알면 살아가는데 훨씬 도움이 됩니다
카테고리 없음

관점을 달리하면 세상이 바뀌는 기적 [미움받을 용기]에서 얻는 지혜

by 원데이엣어타임 2023. 3. 8.

 

단순한 세상이 만드는 기적

세상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복잡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인생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실제 어려운 게 아니고 내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 두려운 게 아니고 내가 두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 부정적인 게 아니고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바깥세상의 그 '어떤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떠한가를 생각해 보라.
만약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은 바깥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
바깥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 것이다.
관점을 달리 봐야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내가 재밌다고 생각하면 재밌어지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내가 마음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의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태도가 전부다.

인간은 변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행복해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트라우마에 빠지기 쉽다. 트라우마란 여러 가지 정신 장애의 원인이 되는 격렬한 감정적 충격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보통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트라우마)가 현재의 불행을 일으킨다고 하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발생할 만할 어떠한 사건이 있었다면, 이 사실이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는가?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나를 규정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 사실이 그 이후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본인의 태도가 그 이후의 생각을 결정짓는 것이다. 즉 그 사실에 기반해서 내가 어떠한 감정과 생각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할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미래가 결정된다면 똑같은 과거를 겪은 모든 사람이 모두 똑같은 결말을 가질 텐데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실패로 말미암아 더 불행해지고 누군가는 실패를 거울삼아 성공하기도 하지 않는가.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명제하에 과거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우리는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가는 꼭두각시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경험을 통해 깨달은 의미를 바꿔주기만 하면 그 이후의 결과가 바뀌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어떤 실패로 인해 불행해졌다고 생각한다면, 실제 마음속에서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싶은 목적이 있다고 한다. 불행하기 위해서 실패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위의 사람들이 위로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사람들은 모두 어떠한 목적을 따라 살고 있다는 목적론을 설파한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큰 소리를 내서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자신이 하는 말을 듣게 하고 싶은 목적이 있기 때문에 화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 수단으로 분노라는 감정을 꾸며내는 것이다. 말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 귀찮아서 저항하지도 않는 상대를 더 값싼 수단으로 굴복시키려고 한 것이다. 분노와 같은 감정이라는 것은 도구일 뿐이다. 즉 인간은 감정에 저항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고 감정에 지배받지도 않고 과거에도 지배받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걸 깨닫지 못하고 과거와 감정에 스스로를 속박시키고 있을 뿐이다. 왜 인간은 스스로 불행한 상태를 선택한 것일까?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기 때문이다. 나의 지금 생활양식, 가치관, 처한 상황을 선택한 것은 처음에는 무의식적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 인종과 국적, 문화, 가정의 영향이 컸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를 선택한 것은 나이다. 사실 인간은 변할 수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은 변하지 않고 사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고 이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매일 10시간 일에 치여 산다고 해도 그다음 날도 이런 날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고 내가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심적인 안정감을 갖는다. 반면에 내가 변함을 선택하면 새롭게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으로 불안한 삶을 살게 된다. 하루 앞을 볼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인간은 이런저런 불만이 있더라도 이대로의 나로 사는 편이 그나마 안심이 되는 것이다. 만약 바꾸려고 한다면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는 개개인의 몫이다. 책 속의 철학자는 만약 당신이 현재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 자리에 있지 말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는 가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두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질투하거나 부러워한다면 무엇이 주어졌는가에만 집중해서 그렇다.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집중해 보자. 한편, 아들러의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이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능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변할 수 있을까? 바로 당장해야 할 일은 지금의 생활양식을 버리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만약~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실패하는 현실에 맞닥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재능이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의 생활양식을 바꾼다는 것은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는 것이다. 단순한 과제와 해야 할 일을 두고 할 수 없는 이유를 이리저리 찾는 게 더 인생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나인 채로 그저 생활양식을 고르기만 하는 거다. 그 얼마나 간단한가. 이렇게만 한다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을 것이다. 달리말하면 내 인생은 지금, 여기에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겠다.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남에게 미움을 사고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받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한다. 무시당하고 거절당하느니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즉 사람들의 목적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좋아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자신의 단점을 찾아내서 스스로를 미워하고 인간관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나는 이런 단점이 있어 거절당했고, 이런 단점만 없으면 나도 사랑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의 단점 덕분에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불만,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단점이 사라진다 해도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시험에 합격하면, 또는 돈을 많이 벌면 모든 게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만 막상 바라던 것이 이루어져도 뭐 하나 달라지지 않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아마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사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나 또한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 않은가.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간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는 전적으로 타인과의 비교를 겪기 때문이다. 열등감이란 곧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이라는 것이다. 만약에 지구상에 나 밖에 없다면 나에게 아무리 많은 돈이 있더라도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다. 인생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다. 지금의 나보다 앞서 나가는 것만이 가치 있는 일이다. 경쟁관계의 틀에서 벗어나면 누군가를 이길 필요가 없고 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해방된다. 그렇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게 되고 그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타인일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 친구다라고 느낄 수 있다면 세계를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인간관계에 관한 고민도 줄어들 것이다. 만약 누가 싸움을 걸어온다면 권력투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싸움에서 물러나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지 말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다. 분노를 참지 말고 분노라는 감정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배우자. 분노란 감정은 앞서 말했듯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나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분노라는 도구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참을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분노 이외의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나는 옳다고 상대를 비난하지 말자.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프레임은 결국 주장의의 타당성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이야기는 거기서 마무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려고 하고,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곧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승패에 연연하는 순간 바른 선택을 할 수 없어진다. 경쟁이나 승패에서 벗어나야 자신을 바꿀 수 있다. 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적으로 보고 친구로 여기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용기를 잃은 우리가 인생의 과제로부터 도피한 탓이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간의 행동과 심리에 대한 목표를 제시했다. 자립할 것,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을 행동의 목표로 제시했다. 또한 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과 사람들은 내 친구다라는 의식을 가지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는 인생의 과제를 직시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이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데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가 인생의 과제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구실을 만들어서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려고 하는데 이는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어서라고 한다.

진정한 자유로 가는 지혜

인간관계는 때로는 자유를 빼앗는다. 타인에게서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은 나에게서 자유를 앗아갈 수 있다.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것은 내가 가치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데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나의 가치는 그런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타인 역시 나의 기대를 맞추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더라도 화내지 말고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라는 질문으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자. 그리고 타인의 과제는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는 서로 간의 과제를 함부로 침범해 들어오기 때문에 생긴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거리가 가까운 가족일수록 더 의식적으로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타인을 사랑은 하되 타인의 인생에 관여하지 말라. 자신의 삶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믿는 최선의 길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그 선택에 타인이 어떤 평가를 내리는 것은 타인의 과제이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지향해야 한다. 남이 나를 괴롭히는 문제조차도 타인의 과제이지 내 과제가 아님을 기억하자. 만약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겠다.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자.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해방되고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하지만 우리는 혼자서도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가 갈망하는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스스로의 방침에 따라 살고 있다는 증표이다. 누구도 미움을 받고 싶지는 않겠지만 자유를 얻으려면 타인에게 미움을 살 수 있기도 하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 말자.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다. 나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나를 싫어하느냐 좋아하느냐는 나의 과제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개입할 필요가 없다.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

나는 내 인생 영화의 주인공이지만 어디까지나 공동체의 일원이자 세계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타인을 친구로 여기고 거기서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공동체 감각이라고 한다. 그들이 나에게 무엇을 줄까 생각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자. 이 책은 타인을 행위의 차원이 아닌 존재의 차원에서 바라볼 것을 권한다. 타인이 무엇을 했는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존재하는 그 자체로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한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

책 속의 철학자는 과거와 미래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지금 현재에 포커스를 맞추라고 했다. 엄청난 비극이 일어났을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따져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 나를 싫어하더라도 타인이게 공헌한다는 신념이 있다면 뭘 해도 상관없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며 그저 자유롭게 살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댓글